"차 빼 달라" 전화받고 간밤에 마신 술 덜 깬 상태로 주차현장으로
주차한 차를 빼 달라는 말에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로 나가 차량을 2m가량 운전한 사람을 음주운전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장모씨는 2015년 6월 오후 11시까지 지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뒤 식당 근처 빌라 주차장에 차를 그대로 둔 채 귀가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8시께 장씨는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빌라 측에서 장씨의 차 때문에 공사를 할 수 없다며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은 장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전화를 해 차를 이동시키라고 했다. 1시간가량 뒤 빌라에 도착한 장씨는 2m 정도 차를 이동해 주차했는데, 차량을 완전히 뺄 것을 요구하던 공사장 인부들과 시비가 붙었다. 이 과정에서 인부 가운데 한 명이 장씨에게서 술 냄새가 난다며 장씨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현장에 나온 경찰은 "술을 마셨느냐"고 물었고 장씨는 "어젯밤에 마셨다"고 대답했다. 경찰이 음주감지기에 의한 확인을 요구하자 장씨는 "이만큼 차량을 뺀 것이 무슨 음주운전이냐"고 측정을 거부했다. 당시 현장에 술을 마셨는지 여부를 할 수 있는 음주감지기만 가져오고,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음주측정기를 갖고 오지 않았던 경찰은 지구대로 임의동행을 요구했지만 장씨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경찰은 장씨를 음주운전(도로교통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해 지구대로 데려갔고, 결국 장씨는 음주측정거부죄로 기소됐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음주측정거부(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장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6도19907).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212조에 의해 현행 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지만, 행위의 가벌성, 범죄의 현행성과 시간적 접착성, 범인·범죄의 명백성 이외에 체포의 필요성, 즉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관들로서는 음주운전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였으므로 음주감지기 외에 음주측정기를 소지했더라면 임의동행이나 현행범 체포 없이도 현장에서 곧바로 음주 측정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장씨가 현장에서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장씨가 전날 늦은 밤 시간까지 마신 술 때문에 미처 덜 깬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술을 마신 때로부터 이미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 운전을 했으므로 음주운전죄를 저지른 범인임이 명백하다고 쉽게 속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장씨가 지구대로부터 차량을 이동하라는 전화를 받고 2m 가량 운전하였을 뿐 스스로 운전할 의도를 가졌다거나 차량을 이동시킨 후에도 계속해 운전할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앞서 1,2심은 "장씨는 경찰관이 약 30분이라는 충분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세 차례나 측정을 요구했는데도 각 측정요구에 모두 불응했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입력 : 2017-04-27 오후 4: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