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 수사 과정에서 공범 진술에 의존해 중국인 2명 기소
-법원, “신빙성 떨어져”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선고…형사보상금 1억 나와
-변호인 “피의자 입장 고려 안 돼” vs. 사정당국 “마약 수사 현실적 어려움”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무죄)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대법원)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마약사범으로 의심되는 중국인 2명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오히려 혈세 1억원을 형사보상금으로 물어준 일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3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은 한국과 중국을 자주 왕래하는 중국인 일당 4명이 필로폰 등을 몰래 들여와 판매ㆍ투약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들에 대한 잠복수사가 이어졌고, 같은 해 5월 중순 제주도의 한 모처에서 중국인 여행가이드인 A 씨와 B 씨를 현행범으로 긴급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두 사람에 대한 추가조사에서 시작됐다. 공범으로 의심됐던 중국인 C 씨와 D 씨의 혐의를 추궁하던 경찰은 A에 대한 세 차례 조사에서 “C, D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일관된 진술을 받아냈다. 범행 일시와 장소, 방법 등도 구체적이었다. 계속된 대질심문에서 B는 A를 향해 “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냐”고 고함을 치는 등 상당 부분 의심이 가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C와 D는 마약 사건 용의자로 입건됐다. 경찰은 이들의 마약 투약 여부를 가리기 위해 같은해 6월 2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고, 두 사람 모두 각각 필로폰에 대한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C와 D는 “(중국에 있었던) 2012년 11월 17일 경에 중국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종업원이 ‘술 깨는 약’이라면서 준 액체를 마시긴 했는데 그 액체가 필로폰이었던 것 같고 마약인 줄 몰랐다”며 “한국에 돌아온 이후(같은 달 24일)에는 필로폰을 전혀 투약한 적이 없고, 범행 장소로 지목된 모처에도 간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로 송치된 A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 A는 담당 검사에게 “(C와 D의 이야기는) 환각 상태에서 내가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갑자기 말을 바꿨다.
수사에 혼란이 생기긴 했지만 검찰은 A와 CㆍD의 통화내역과 출입국 기록 내역, A가 경찰 조사 당시 진술했던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환각 상태라고 보기 어려운 점, 그리고 마약 검사를 위해 C와 D로부터 체취한 모발이 5cm를 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두 사람을 구속기소했다. 통상적으로 모발이 1개월에 1cm 가량 자란다는 점을 감안해 두 중국인이 한국에 온 이후에 마약을 투약한 근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1심 재판부도 이러한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C에게는 징역 1년, D에게는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A가 필로폰을 투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를 받았고, 유치장에서도 상당 기간 환각상태에 있었다는 동료 수용자들의 증언이 나오는 등 A의 진술만으로는 증거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기에 불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A가 자신의 마약범죄와 관련 (형량을 줄이는 등의) 공적을 위해 허위의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며 “ C와 D가 과거 마약 관련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고, 그밖에 통화기록ㆍ출입국 현황 등은 간접증거 내지는 정황증거에 불과해 직접적인 투약행위 자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아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같은 2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무죄가 확정된 이후 C와 D는 자신들이 각각 구금돼 있었던 326일, 242일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에 형사보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보상청구권은 형사피의자로 사법당국에 구금됐던 자가 불기소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 그동안 입었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을 국가에 대해 청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춘천지법 제2형사부(부장 노진영)는 지난달 “국가는 보상금 상한(1일 22만3200원) 액수를 적용해 C와 D에게 각각 6590만원, 484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증거 가치를 판단할 때는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서는 안된다”며 “기억은 왜곡ㆍ선별될 가능성이 높다. 수사 단계에서 검ㆍ경이 피의자 입장을 고려해 이 점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마약범죄 자체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 않고, 실제로도 관련자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효율적으로 마약사범을 검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헤럴드경제=양대근ㆍ고도예 기자] 입력 2016.05.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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